최예태 전통과 현대의 조화
박선규(문학박사)
톰슨의 <미술의 역사>에 “전통은 예술가가 새로운 것을 창작하기 위한 도약의 발판이요 그 에너지원이다”하였다. 할 포스터의 <반미학>에서는 “현대란 용어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라틴어의 모더누스(modernus)fh 현대란 단어는 ‘척도로 하는 때’의 의미이다. 이러한 ‘현대’라는 용어는 기독교에서 공식화된 현재(the present)와 이교도의 과거(past)를 구별하기 위하여 세게 후반에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12세기 찰스 황제시대에도 자기를 ‘현대적’이라고 생각하며 이 말을 사용하였는데, ‘현대’라는 용어는 ”모방을 통한 재발견의 모델’로 생각되었던 고대와의 관계 개선을 통하여 새로운 시대의식이 형성될 때면 자기 이해의 개념으로 되풀이되어 나타나게 되었다”하였다.
여기 최예태 화백의 작품은 우선 위에서 말한 ‘전통’과 ‘현대’라는 그 개념적인 시각에서 논할 수 있다. 전통적인 관념에서 보면 아카데믹한 묘사력의 현실성을 바탕으로 한 모더니스트라는 것이다. 작품은 묘사력과 표현력의 불가분의 관계 속에 놓이는데, 묘사력이 미숙하면 표현하려는 것이 제대로 표현될 수 없고, 표현력이 부족하면 의도한 대로 작품이 창작되지 못한다.
최예태 화백은 특히 누드에서 그 묘사력과 표현력의 충실함을 족히 보여주고 있다. 확실하게 긋고 넘어가는 그의 묘사력은 경지를 더욱 업그레이드 시킨다. 그리고 최예태 화백의 표현력을 현대라는 관념에서 말하면 즉 모더니즘은 1910년경을 기점으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커다란 하나의 표현 양식을 예술에 각인해 놓았다. 물론 이 모더니즘은 표현양식에 대한 말들이 많지만 그 가운데 하나만 예를 들면 물체의 고유색을 배제하고 창조색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칸딘스키의 음악은 구체사물을 빌리지 않고도 작가의 감정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는 추상주의의 예술사상에 근거하여 구상주의적 화가들도 물체의 고유색에 의지하지 않아도 작가가 의도하는 바 그 생각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는 발상으로 창조색을 선호하는 것이다.
작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최예태 화백은 하늘은 파랗다는 일반 색채관념으로 처리하지 않는디. 누드도 그러하다. 미는 곧 그가 시도하는 창조색으로 ‘작가의 예술에 대한 욕구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묘사력이 아무리 뛰어난 작가라도 고유색 그대로 묘사하지 못한다. 흡사한 색이 될 뿐이다. 그렇다면 그 고유색을 작가가 노리는 색으로 창조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고대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서 새로운 시대의식의 형성’을 반영하는 ‘자기 이해 개념’이라는 것이다.
최예태 화백은 이러한 두 가지 측면에서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또한 누드와 산을 소재로 한 풍경화를 함께 전시하는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인간은 자연에서 분리된, 독립된 개체이면서도 자연과 동등한 가치개념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이러한 자연관과 인생관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미술의 출현은 한 양식이 다른 양식으로 바뀐다는 교체 이상의 의미가 있다.
강조되고 창조된 양식에 대한 인식을 촉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인식할 여지를 마련하기 위한 ‘인식 구조’ 자체의 해체이다. 최예태 화백은 비판적으로 경고하고 진실을 촉구하는 요소가 되기도 하고, 예술이 어디까지나 이 사회를 지배하고 경제적으로 또는 이념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것인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신비스런 생명의 흐름과 그 충동으로 선험적인 무의식 세계로 진입하려는 경지 높은 행위를 통하여 재능의 힘으로서 창조란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정신 세계의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